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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요재공>난파공휘창현(창훈)묘표(蘭坡公諱昌鉉(昌勳)墓表)
蘭坡公諱昌鉉墓表 余寓福川之久 寶爲接隣 與其坊人士 互相徃來 聞蘭坡趙公 早入新學 訓導我邦俊進 數十年以辛酉三月十五日 享年八十二 歿于文德之舞灘 因葬于其後麗 乾之原 未幾 公之嗣子化翼介黃應圭 曳衰服來泣道其先丈平生言行之大略 請余以墓道之文 余與兩友善 安敢固辭 公諱昌勳字仁權 蘭坡別稱也 趙氏系出玉川 麗朝檢校大將軍光祿大夫 諱璋爲上祖累傳而 諱元吉號農隱 與圃牧陶冶 有五隱之稱 官門下侍中封玉川府院君 不拜而隱 贈諡忠獻 於公爲二十世 諱瑛 號樂齋 官典工判書爲十九世 自後 仕官文學相繼不替 烽燿史策 曾祖諱永運 號東川 贈嘉善 祖諱顯玟 號溪隱 以耆社覃恩階通政 考諱東禧以孝友著世 妣咸安尹氏 御家有度 以賢媛頌之生公于 高宗庚子七月十七日天姿豁然 聰穎超倫 幼就塾師學不煩提督而 文藝驟達卒業于 光府之師範 入校壇四十年 以國粹精神 育諸生 歷任羅順高寶 校長公之勤勞庶務 與夫諸般施設 他校爲之觀光焉退而家居 與數郡諸文士 倡探勝之契 春秋佳日 吟嘯歌呼山水泉石之間 暢叙其幽懷且治家檢素 持身廉直 待人處事 無一惰慢苟且之態鄉黨以爲難及 爲配咸陽朴諒炫之女妣柔淑愼 孝舅姑 奉君子 每準閨則 壬戌十月八日卒墓雙兆 生一男三女 男卽化翼 忘私營公 名聞坊内 生容浩 女適靑松沈起燮 江陵劉盛福 清州韓鍾燮 沈男載烈成柱 劉男永俌 韓男在浩在輝以下不錄 鳴呼公 以溫恭敏悟之質 幼襲庭訓 長修新學一生矻矻敎人不倦 如公 謂之現敎育 界中第一人者 不爲過語也 程川混過前 千山屹在上 公魄埋其間 凡行人之過此者 倘識仁人 之阡而式之也歟 辛酉季夏下澣 長興 魏啓道 撰 난파공휘창현묘표(蘭坡公諱昌鉉墓表) 내가 복천에 와서 산지 오래라 보성이 이웃이 되여 그 고을인사와 더불어 서로 왕래하며 듣기에 란파조공은 일찍 신학에 들어가 우리나라 준수한 후진을 훈도한지 수십년이라더니 신유 三月十五日 향년 八十三세로써 문덕면 무탄에서 몰하시니 인하여 그후로 건좌원에 안장하였더라. 얼마 못되여 공의 사자 화익이 황응규(黃應圭)를 인하여 최복을 끌고와서 울부짓고 그 선장 평생 언행의 대략을 말하며 나에게 묘비문을 청하니 내가 두사람 다 좋은 벗이라 어찌 굳이 사양하리요 공의 휘는 창훈(昌勳)이요 자는 인권(仁權)이요 란파(蘭坡)는 아호이다. 조씨가 옥천에 이어났으니 여조검교대장군 광록대부 휘장(璋)으로 상조를 삼고 루전하여 휘 원길(元吉) 호 농은(農隱)이니 포목도야(圃牧陶冶)로 더불어 五은지층이 있었다. 관은 문하시중으로 옥천 부원군을 봉하고 시호를 충헌이라고 증하시였으니 공에게 二十세요 휘 영(瑛) 호 요재(樂齋) 관 전공판서(典工判書)는 十九세이니 뒤로부터 사관문학이 서로 이어 끊이지 않고 사책에 빛이나다. 증조의 휘는 영운(永運) 호는 동천(東川)이니 가선대부를 증하셨고 조의 휘는 현민(顯玟)이요 호는 계은(溪隱)이니 늙은이에게 은전을 폄으로써 통정의 계급에 올랐고 공의 휘는 동희(東禧)니 효우로 처세하고 비는 함안윤씨니 어가에 법도가 있고 현원으로 칭송하다. 공이 고종경자 七月 十七日에 생하시니 천자가 활연하여 총영하고 초윤하니 어려서 서당 선생에게 나가 배우매 찌고 가르치지 않아도 문예가 빨리 숙달하였고 광주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교단에 선지 四十년에 국수의 정신으로 제생을 가르치고 나주 순천 고흥 보성 교장을 역임하시며 공의 근로로 제반시설을 갖추었으니 타교의 관광이 되었더라 물러와서 집에 있으매 여러고을 문사로 더불어 탐승계를 창설하여 춘추가일이면 산수천석지간을 찾어 글짓고 노래부르고 그 유회를 창서하고 또 집을 다스리매 거모하고 몸가지기를 염직하며 대인처사 한번도 태만하고 구차한 태도가 없으니 향당이 따르기 어렵다 하더라 배위는 함양박양현의 녀니 완유하고 숙신하여 구고에게 효도하고 군자를 경봉하며 마양 규문의 법칙을 준수하시다. 임술十月八日에 졸하시니 묘는 쌍분하셨다. 一남三녀를 낳으셨으니 남은 즉 화익이니 사사로운 일은 않고 공번든 일을 영위하니 이름이 군내에 들렸더라 용호를 낳았고 녀는 청송 심기섭 강능 유성복 청주 한종섭에게 출가하였으니 심남은 재열성주요 유남은 영보요 한남은 재호재휘다. 이하는 불록한다. 오호라 공은 온공민오한 자질로써 어려서 가정훈계를 받어 길게 신학을 닦어 일생에 부지런히 일하고 사람을 가르치되 게을리 않하니 공같은 이는 현 교육계에 제 一人者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로다. 정지내물이 혼혼이 앞을 지나고 천봉산이 높이 솟아 위에 있으니 공의 넋을 그 사이에 묻었도다. 대범 행인들의 이곳에 지내는자 하다가 어진 사람의 무덤인 줄 알고 굽힐진제. 신유계하하한(辛酉季夏下澣) 장흥(長興) 위계도(魏啓道) 찬(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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